2014년 4월 16일 아침 세월호가 침몰했다.
배 안에 타고 있던 학생, 일반승객 등 476명이 타고 있었다. 이 중 294명은 사망하고 10명은 실종되었다.
구조대책 따위는 없었고 모든 사람이 우왕좌왕하면서 자기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동안,
2014년 4월 대한민국은 300명이 넘는 대한민국 국민이 하릴없이 수장되는 것을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4개월이 지났다.
모든 과오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 같던 청와대와 여당은 두 차례의 선거 중 하나는 선전했고, 다른 하나는 압승을 거뒀다.
이제 '세월호' 대신 '경제'를 이야기한다.
300명이 넘는 국민을 수장시킨 대통령은 언제나 그랬듯이 남 탓하기에 여념이 없다.
세월호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국무총리를 대신해서
2명의 이상한 인물들을 연이어 물먹이고
다시 사퇴한 인물을 불러들이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사건을 덮었다.
뉴스가 안되면 그만
조용히 처리되면 그만
이리 저리 돌려서 흐지부지해버리면 그만
세월호 사건의 원인을 규명해달라는 특별법 같은 건 애초에 처리할 생각따윈 없었을 거다.
단지 이리저리 조리돌림하다가 흐지부지해버리면 그만이지.
대책이랍시고 돈 몇 푼.. 바라지도 않는 특혜를 준다고 언론에 알려주면 그만이다.
남의 일이라고?
벌써 내 일이다.
다음 차례는 누군가?
세월호는 폭력과 무책임으로 일관된 사고방식이 어떻게 국민들을 우롱하느냐가 아니라 그래봐야 저들은 아무 변화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사다리는 이미 치워졌다.
국민은 국민의 수준에 맞는 리더를 뽑는게 맞나부다.
오바마의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재선에 성공한 이유는 오바마가 연설을 잘해서 그런 건 아닌 듯 싶다.
나라도 아주 조금이나마 위로 올라선 사람이 된다면 기꺼이 등을 내주고 어깨를 빌려주리라. 낮은 곳에서는 서로를 위해야만 살 수 있다.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힐링이란?
"heal"은 타동사다.
무엇인가를 낫게 한다는 뜻이지, 스스로 낫는다는 뜻이 아닌 거다.
무엇을 낫게 한다는 뜻인가? 그 대상에 따라서 사람마다 힐링이 되고 또 되지 않는 거겠지?
'힐링캠프'를 보면서 내가 힐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주말에는 '나'를 힐링했다.
나의 '어떤 것'을 힐링했을까? 어떤 것이 아니다. '나'다. '나'를 힐링한다는 것은 약간 아이러니하지만 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을 힐링한다면 그것은 본인을 완전히 객체화시킬 수 있는 성인의 반열이던지, 완벽한 나르시스트이던지...ㅎㅎㅎ
주말 나들이의 목적은 '빈둥거림'이었다.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냥 무의미하게..멍 때리면서...뭐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해야 할 것도 별로 없이 말이야...돈을 내라고 하면 돈을 좀 내고...별로 저항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불안함에 쫓겨 이리저리 치대는 '나'에 대한 휴식이 아닐까 싶다.
맛있는 거 못 먹어도 그만이고, 좋은 거 못해봐도 된다. 맛집에서 한두시간을 기다리고 먹은 음식은 '맛있다는 음식'이지 '맛있는 음식'은 아닐 거다. 그 가치는 내가 기다린 시간과 상관이 있다. 어느 누가 긴 줄 서서 한참 기다린 음식이 맛없다고 팽개치고 나갈 것인가? 좋은 곳은 어느 해설서에 거창한 미사여구를 달아서 설명한 글을 읽어서 '좋은 곳'으로 분류되는 것이겠지?
나에게 이번 주말은 "좋은 음식은 기분 좋을 때 먹는 음식이고 좋은 곳은 기분 좋을 때 있는 곳"이란 것을 다시 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구름이 줄지어 늘어선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비치고
풀과 나무로 덮인 야트막한 능선을 배경으로
평상에 앉아서 동동주 한 잔을 마시니까
왜 행복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알 것 같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할까?
잘 살면 행복해질까?
다른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것이고
내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을 쓰면서도 좀 웃기네.
행복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니....
무엇인가를 낫게 한다는 뜻이지, 스스로 낫는다는 뜻이 아닌 거다.
무엇을 낫게 한다는 뜻인가? 그 대상에 따라서 사람마다 힐링이 되고 또 되지 않는 거겠지?
'힐링캠프'를 보면서 내가 힐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주말에는 '나'를 힐링했다.
나의 '어떤 것'을 힐링했을까? 어떤 것이 아니다. '나'다. '나'를 힐링한다는 것은 약간 아이러니하지만 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을 힐링한다면 그것은 본인을 완전히 객체화시킬 수 있는 성인의 반열이던지, 완벽한 나르시스트이던지...ㅎㅎㅎ
주말 나들이의 목적은 '빈둥거림'이었다.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냥 무의미하게..멍 때리면서...뭐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해야 할 것도 별로 없이 말이야...돈을 내라고 하면 돈을 좀 내고...별로 저항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불안함에 쫓겨 이리저리 치대는 '나'에 대한 휴식이 아닐까 싶다.
맛있는 거 못 먹어도 그만이고, 좋은 거 못해봐도 된다. 맛집에서 한두시간을 기다리고 먹은 음식은 '맛있다는 음식'이지 '맛있는 음식'은 아닐 거다. 그 가치는 내가 기다린 시간과 상관이 있다. 어느 누가 긴 줄 서서 한참 기다린 음식이 맛없다고 팽개치고 나갈 것인가? 좋은 곳은 어느 해설서에 거창한 미사여구를 달아서 설명한 글을 읽어서 '좋은 곳'으로 분류되는 것이겠지?
나에게 이번 주말은 "좋은 음식은 기분 좋을 때 먹는 음식이고 좋은 곳은 기분 좋을 때 있는 곳"이란 것을 다시 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구름이 줄지어 늘어선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비치고
풀과 나무로 덮인 야트막한 능선을 배경으로
평상에 앉아서 동동주 한 잔을 마시니까
왜 행복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알 것 같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할까?
잘 살면 행복해질까?
다른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것이고
내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을 쓰면서도 좀 웃기네.
행복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니....
2014년 8월 6일 수요일
폭력의 시대
가하는 자의 귓속에는 당연한 것이라 속삭이고, 당하는 자에겐 너도 해보라 속삭인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것은 분명 또 다른 폭력이지만 마치 정의로운 일인 것처럼 포장되는 일이 허다하다. 무관심의 폭력은 또다른 무관심의 비호를 받으면서 개인주의라는 비슷한 개념에 기생충처럼 붙어 자라난다.
나는 누구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누구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는가? 이미 만성이 되어 무감해진 터라 그 방향성을 스스로 깨닫기 어려워진 건 아닐까? 폭력의 다양한 모습은 일견 긍정적인 형태로 나타나기까지 하니 매번 스스로 묻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누구에게 의존하겠다는 생각은 빨리 버리자. 내가 생각하고, 내가 판단해야 한다.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그것이 남과 어떻게 다른지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수정해야 한다. 피곤하고 힘들다면 그것이 당연하다. 중요한 것이 쉽게 주어지지는 않는 것이니까.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폭력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자각하고 의심하고 판단하며 살아야 한다. 힘들다고? 그렇게 쌓아온 길을 돌이켜 볼 때,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네가 어떤 사람인지에 조금이나마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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