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아이가 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뜬금없지요? ^^ 아이들은 보통 어떤 수술을 많이 받을까요? 심장이나 뇌수술 같은 중한 경우를 제외하면, 주로 수술받는 경우로는 편도선 절제, 중이염, 골절, 사시, 포경 등이 비교적 흔할 것 같군요. 아이들은 의사와 협조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국소마취로 수술할 수 있는 경우에도 전신마취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수술들은 '응급'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예정'수술로 날짜와 시간을 따로 정해서 시행합니다. 입원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또 많은 수에서 당일입원했다가 수술하고 당일 퇴원하는 '당일수술'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근데 수술날짜를 정해놓고 막상 당일이 되서 '감기'에 걸린 아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아이의 상태를 봐서 그대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날짜로 다시 스케줄을 잡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스케줄을 다시 잡게 되면 불편함이 많아지죠...특히나 맞벌이부부가 많아지는 현실에서, 이 날을 위해서 휴가를 냈다거나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곤란한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 입장에서는 가능하다면 예정된 당일에 수술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수술을 연기해야 하는지와 수술을 진행하면 어떤 위험이 있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합시다.
아이들에게 감기나 천식은 비교적 흔한 병입니다. 면역력이 약하고 호흡기 저항력이 약하기 때문이지요. 감기나 천식을 앓고 있다는 자체가 수술을 연기해야 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이런 경우에 수술전후로 호흡기계 합병증의 빈도가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발생할 수 있는 호흡기계 합병증으로는
기관지연축(bronchospasm)
후두연축(laryngospasm)
산소포화도 감소(desaturation)
기도폐쇄(airway obstruction)
등이 있는데요, 소아에서는 산소요구량이 높지만 산소저장능력이 적고, 기도(airway)의 문제로 인한 심정지의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이러한 호흡기계 합병증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러한 호흡기계 합병증을 예측할 수 있는 위험인자(risk factor)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최근에 걸린 감기(recent cold)
운동시 발생하는 천명음(wheezing during excercise)
1년 사이에 3회 이상의 천명음이 발생한 경우 (wheezing more than 3 times in the previous 12 months)
야간의 마른기침(nocturnal dry cough)
천식, 습진, 비염 등의 가족력(family history of asthma, rhinitis, eczema)
동거하는 가족 내에 흡연자가 있는 경우
이러한 경우에 호흡기계 합병증이 증가한다고 되어있지요.
'최근에 걸린 감기'는 보통 2주 사이에 발생한 경우를 말하는데요, 감기에 걸리면 기도(airway)의 반응성이 증가해서 기도삽관등 기도를 자극하는 경우에 연축현상이 더 자주 발생합니다. 반응성이 증가된 상태가 2주 정도 지속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 당장 필요한 수술이 아닌 경우에는 2~3주 정도 연기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감기에 걸린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 기도 연축이 발생할 가능성이 차이가 없다는 보고도 있긴 하지만, 산소포화도의 감소와 일시적인 기도폐쇄가 발생할 가능성은 더 증가합니다. 비충혈이 있거나 콧물, 가래 등 분비물이 많은 경우에도 호흡기계 합병증이 증가합니다.인자들 중에서 '가족력'이 있는 경우는 특히 위험할 수 있는데, 가계도 내에 2명 이상에서 증상이 있는 경우 기도연축의 가능성이 3배까지 증가한다고 합니다. 흡연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흡연자가 아버지 혼자인 경우도 위험이 증가하지만 어머니가 흡연자거나 양친이 모두 흡연자인 경우에서 위험이 더 증가합니다. 아무래도 아이를 더 많이 보는 사람의 영향이 더 크겠지요.
"어떠어떠한 위험이 있다"라고 이야기할 때는 '그래서 하면 안된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러이러한 위험이 있으니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2주 정도 연기합시다" 라는 의미는 "2주 후에 하면 괜찮습니다"라는 뜻이 아니라 "2주 정도 기다리면 위험이 줄어들 겁니다"라는 뜻이지요. 위험요인의 분석은 결국 수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수술에 대한 위험성을 고려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모든 수술에는 위험요인이 있고 그런 위험요인을 미리 파악하고 충분히 대응하기 위해서 전문가 집단이 있는 거죠. 감기에 걸렸다고 수술 못하는 것도 아니고, 위험요인이 있는 경우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위험을 줄이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사전에 집도의나 마취과의사와 충분히 상담하고 의견교환을 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입니다. 저에게는 마취를 하는 행위가 상당히 일상적인 일이라서 아주 새롭거나 신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환자 한 분 한 분을 생각해보면, 수술대 위에 누워서 마취와 수술에 대해서 고민하는 일이 상당한 스트레스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기회에 마취-특히 전신마취-에 대해서 좀 알아보면서, 환자가 잠든 이후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알 수 있다면 수술 전에 받는 스트레스가 조금은 덜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글을 올립니다.
1. '마취'는 어떤 의미일까요?
마취(Anesthesia)는 한자로 痲(저릴 마,저리다,마비되다)와 醉(취할 취, 취하다, 취하게하다)의 두 글자로 씁니다. 영어로는 Anesthesia라고 쓰는데 'without'(없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접두어 'an-'과 'sensation'(감각)의 의미를 나타내는 'esthesia'로 구성되어 '감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죠. 두 가지 표현에서 공통적으로 감각에 대한 의미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취를 그 형태에 따라 나눠보자면 전신마취, 부위마취, 국소마취, 진정상태 등의 구분이 있지만, 보통 '마취'라고 표현할 때는 '전신마취'를 주로 의미합니다. 일단 마취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하려면 전신마취에 대한 부분부터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죠.
전신마취란 보통 5가지 상태로 구분지어서 설명합니다.
1. 의식이 없는 상태 (Aconsciousness)
2. 통증이 없는 상태 (Analgesia)
3.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Akinesia)
4. 신체반응(특히 자율신경계)이 둔화된 상태 (Areflexia)
5.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Amnesia)
종합하면 "수술 중 통증을 못느끼는 상태로 축 늘어져서 푹 자고 깬 후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정도가 되겠군요. 물론 부위마취 등 다른 형태의 마취방법은 그 요소가 다르겠지만 어디까지나 전신마취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그 전에 궁금한 거 하나!! 수술의 역사가 참 오래되었다고 하는데-사실 성경을 빌자면 창세기 때부터 마취와 수술이 등장하지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재우고 갈비뼈를 꺼내셨다고 하니까요..^^-, 옛날에는 마취를 어떻게 했을까요?
옛날에 마취를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아주 옛날에는 수술을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위의 두가지 그림을 보시면 환자와 집도의가 있고 '환자를 잡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꽉!!! 잡은 상태에서 수술을 했습니다. 통증이 심하므로 주술적인 방법으로 최면을 걸거나 마약성분이 들어간 약초, 술 등을 먹이는 경우도 많죠. (원시적인 형태의 마취라고 할 수 있겠네요.) 따라서 수술을 짧고 빠르게 하는 의사가 실력있는 의사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형태의 수술은 1800년대까지 그닥 큰 발전이 없이 주욱 지속되는데, 1800년대 중반에 에테르를 이용한 전신마취가 도입되면서 마취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위의 두 그림은 치과의사인 William Morton이 에테르를 이용하여 전신마취를 도입하는 장면입니다.
물론 에테르 이전에 Humphrey Davy등에 의해서 아산화질소라는 기체가 신체의 고통을 줄이고 기분을 좋게 해준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실제로 마취에 쓰이는 것은 에테르보다 나중 일이 되는 군요.
어쨌든 간에 전신마취는 기본적으로 기체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종류의 기체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마취가스가 발명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위에 나열한 것들은 요즘 시대에 쓰이는 마취가스(흡입마취제)입니다. 압력을 높여서 실온에서는 액화상태로 만들어 보관하므로 사용할 때는 특수한 형태의 '기화기'를 통해 인체에 투여하게 됩니다.
ㅎㅎㅎ 간단히 정리가 되셨나요? 아직까진 별로 어렵지 않죠? ^^
그렇다면 실제 전신마취에서 쓰이는 각종 장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지요!! 장비들만 따로 설명하면 단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전신마취를 시작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중에 장비들에 대해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술 중 환자의 호흡을 유지하고 마취가스를 일정하게 공급하기 위해서 환자의 기도(airway)에 기도내관을 넣습니다. (intubation)
적절한 수준의 수면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마취가스의 농도를 조절하고 인공호흡기로 호흡횟수와 호흡량을 조절합니다. (anesthetic maintenance)
이렇게 4단계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먼저1단계에서는 보통 심전도, 혈압계, 산소포화도 감시장치(pulse oximeter)를 부착하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마 쪽에 마취가 얼마나 깊게 되는지를 숫자로 나타내 주는 BIS monitoring을 부착하기도 합니다.
요 것은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장치입니다. 손가락에 끼우면 말초혈관의 산소포화도와 맥박수를 함께 측정할 수 있습니다. 혈색소의 붉은색파장을 감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파장을 교란시킬 수 있는 매니큐어는 가급적 지우는 것이 좋습니다.
요 것은 마취깊이를 측정하는 장치입니다. 마취의 깊이가 0~99까지의 숫자로 나타나고, 보통 40~60정도가 적정수준입니다.
요 놈은 심전도-혈압-산소포화도 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모니터입니다. 각각의 감시장비를 연결해서 한꺼번에 보여줍니다. 영화, 드라마, 다큐 등에서 많이 보여지는 장비입니다. (단지 각각의 감시장비 모듈이 달려있는 모니터일 뿐입니다...^^)
2단계에서는 환자를 본격적으로 재우게 됩니다. 환자를 급격히 수면상태에 들게 하기 위해서는 보통 2가지의 마취유도방법이 쓰이는데, 하나는 혈관주사로 정맥마취제를 투여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높은 농도의 마취가스를 한꺼번에 흡입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정맥주사로 투여하는 정맥마취제입니다. 위에 있는 약제를 "펜토탈"이라고 부릅니다..(아이리스에도 나왔죠...쓰임새가 좀 이상했지만...^^) 아래에 있는 것은 "프로포폴"이라는 정맥마취제로 아주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시사프로그램에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이 사진은 검색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제 사진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군요...^^) 이 의사는 지금 환자가 잠든 상태에서 호흡을 도와주면서, 환자의 폐 안에 마취가스를 충분히 채워넣어 마취를 더욱 깊게 하는 중입니다.
환자가 충분히 잠들게 되면 3단계로 넘어갑니다. 3단계에서는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고 마취가스를 원활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기도에 삽관을 하게 됩니다.
기관내튜브
후두경
위에 있는 사진은 삽관할 '기관내튜브', 아래 사진은 입을 벌리고 혀를 옆으로 밀어내서 튜브를 넣을 공간을 확보해주는 "후두경"입니다. 요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는 다음 동영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동영상을 보시면 "후두경"으로 혀를 옆으로 밀고 식도와 기도를 구분하는 후두개를 들어올려서 기도에 "기관내튜브"를 넣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형은 비교적 형태가 일정하지만 실제 환자에서는 기도의 각도와 후두개의 길이, 구강과 혀의 크기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상당히 어렵습니다.
삽관 후에는 4단계로 넘어가서 튜브와 마취기를 연결하고 인공호흡기를 작동시킵니다. 예전에는 인공호흡기가 없어서 수술이 끝날 때 까지 튜브에 ambu-bag을 연결해서 손으로 계속 호흡을 시켜줬다는군요.(그래서 마취과 의사들은 한쪽 팔이 특히 굵은 사람이 있습니다..^^)
전신마취의 진행과정에 대해서 대략적이나마 이해가 되셨을까요? 그럼 이제 마취기란 놈이 과연 어떤 놈인지 알아봅시다...^^
왼쪽 모델은 좀 구형입니다. 인공호흡기도 일체형이 아니군요. 오른쪽 모델은 요즘 많이 쓰이는 모델로 왼쪽 보다 좀 더 크고 인공호흡기가 붙어 있습니다. 마취기의 내부구조는 조금 복잡해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의외로 단순합니다. 의료용 산소와 의료용 공기를 일정한 양으로 흘려보내주고 거기에 일정 퍼센트의 마취가스를 섞어서 마취과 의사가 정한 일회호흡량과 호흡수에 따라서 강제호흡을 시키는 기계입니다. 간략한(?) 구조도를 봅시다.
마취기의 구조
조금 복잡해보이지만 사실 오른편(산소, 아산화질소, 공기 마취가스)에서 왼편(환자의 폐)로 공기가 흘러간다는 뜻입니다.^^
조금 두서없이 살펴봤지만, 대개 마취가스를 이용한 전신마취는 이런 형태로 시작이 됩니다. 환자분들은 2단계에서 깊이 잠들기 때문에 실제로 다음 단계를 알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이렇게 마취가 시작되면 수술에 따라 몇가지 더 필요한 장비를 구비한 후에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됩니다. 이제 전신마취가 어떤 흐름으로 이루어지는지 약간은 이해가 되셨을까요? 마취과의사는 수술 내내 환자 곁에서 수술의 진행과정, 주변의 상황, 환자의 상태변화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집도하고 있는 의사는 말할 것도 없구요... 수술대에 오르는 많은 환자들이 수술장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셔서, 미지의 순간에 대한 두려움이나 긴장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기를 바랍니다.